이 영화를 보고나서 뭔가 써보고자 했으나, 하루가 지나서야 끄적되고 있는건 너무 많은 기대 를 했기 때문일까.. 박찬욱 감독 특유의 강렬함으로 뭐라 표현할 수가 없어서 일까..
같은 소재로 영화를 만들어도 누가 만들고 어떻게 표현 하느냐에 따라서 그 의미와 이미지는 180도 달라지기도 한다. 그러면에서 박찬욱 감독의 ‘박쥐’는 다른 뱀파이어 영화들과는 차별화된 그만의 색깔이 묻어있다. 너무 자극적이고 너무 선정적이라고 불리는 장면들도 그 만의 독특함을 표현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 될 뿐이다.
상현(신부, 송강호)은 해외에서 진행 중인 백신개발에 참여해, 기적적으로 살아나지만 수혈받은 피의 문제로 뱀파이어가 되고,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살고자하는 인간의 본능과 신부로써의 도덕적 신념, 쾌락에대한 욕망과 사회적 윤리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을 신부와 뱀파이어를 하나의 캐릭터로 결합시킴으로써 너무 섬세하게 잘 그려낸 영화 ‘박쥐’는 내면속의 대립을 잘 보여준다.
남편구실을 전혀 하지 못하는 병든 강호(상현친구, 신하균)와 아들만을 챙기는 시어머니 (나여사, 김해숙) 사이에서 자신의 욕구를 철저하게 억압한채 살아온 태주(김옥빈)는 남편의 친구인 상현에게 묘한 감정을 느끼게 되고, 상현 역시 태주에게 성적매력과 동정심을 가지게 되고, 둘의 관계는 은밀하게 발전해 간다. 식상한 갈등이 되어 버릴 수 있는 본능과 도덕적 신념사이의 대립에 뱀파이어라는 존재를 내새워 조금은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나타내고자 하는 것을 효과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지극히 선정적이고, 손발이 오그라들만큼 자극적인 장면이 많이 나오는 이 영화는 너무 단순하게 바라본다면 3류 영화정도로 생각해 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영화 전체를 놓고 한 장면 한 장면을 생각해보면, 아주 세련된 표현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너무 선정적이고 자극적이이서 관객 모두가 숨을 죽이고 긴장하고 있는 시점에 등장하는 엉뚱한 유머는 긴장을 충분히 풀어줌으로써 역시 박찬욱 감독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인간의 본성이라는 조금은 심각한 내용을 다르면서도 재치있는 위트가 전혀 어색하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이 영화가 가지는 강점일 것이다.
(단, 피의 대한 비위가 약하신분들은 영화를 보지 않을 것을 추천해 드립니다.)
단지 재미를 찾아서 이 영화를 선택한 관객들은 큰 실망을 했을 수도 있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내용을 다루다 보니 재미가 없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나 또한 단순하게는 재미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이 영화를 끝까지 눈을 때지 못하고 본 것은 앞에서도 말했던 긴장을 풀어주는 엉뚱한 유머, 예측 불가능한 대사들은 무미건조해져 버릴 수 있는 영화를 이 영화에도 나오는 ‘오아시스’모임처럼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역할을 하는게 아닐까.
이 영화의 또 다른 시작은 태주가 다시 태어나면서부터이다. 피에 대한 욕망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풀어가는 상현과 태주, 그 사이에서 발생하는 둘 사이의 갈등은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특히 이 둘 사이에서 말한마디 하지 않지만 분노로 가득찬 눈빛으로 온몸에 닭살이 돋을만큼 소름이 끼치게 하는 나여사의 모습은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며 최고의 연기력을 인정받고 있는 그녀였기에 가능한 것이 아니였나 생각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볼만한 것은 뭐니뭐니 해도 연기자들의 환상적인 연기가 아닌가 한다. 인간 내면의 대립을 너무나도 잘 표현한 것이 아닌가 한다. 불만에 가득찬 여인에서 쾌락을 추구하고 삶에 대한 욕망을 불태우는 태주의 역을 너무나도 멋지게 소화해난 김옥빈, 노출의 수위가 심해서 많은 여배우들이 출연을 고사한 태주의 역할이 김옥빈 이라는 배우를 통해서 재탄생 한 것이 아닌가 한다. 특히 시시각각 변하는 그녀의 눈빛은 과히 최고였다고 말할 수 있다. 출연하는 영화마다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었던 송강호, 이번에도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인간의 본능과 도덕적 신념, 쾌락과 사회적 신념 사이의 갈등을 다양한 표정과 눈빛을 통해서 완벽하게 상현이라는 캐릭터를 소화해 내고 있다. 무뚝뚝해 보이지만 미세하게 변하는 그의 표정은 상현 이라는 캐릭터의 고뇌하는 모습을 표현하기에 충분했다. 여기에 이 영화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상현의 친구 강구역할 신하균의 조금은 엉뚱하고 조금은 모자라 보이는 연기는 이 영화가 매끄럽게 진행 되도록 하는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 더불어 나여사 김해숙의 연기는 감히 최고 라는 말을 붙여주고 싶다. 영화 후반부에서 그녀의 무서울 정도의 소름을 끼치게 만드는 눈으로만 해내는 연기는 보는 이들의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물론 이 영화가 장점만 가지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 내면의 갈등은 잘 그리고 있었지만 이 과정에서 단락 단락의 스토리들이 다소 연관성이 없이 스킵 하는 느낌으로 넘어 가는부분이 많아서 아쉬움이 남는다. 독자들의 상상으로 맡기기 위해서 그랬다면 할말은 없지만 영화를 보면서 생각할 부분이 너무나도 많은 작품인데 스토리 중간중간 연결고리 까지 관객들의 생각으로 맡겨버리기엔 너무 큰 부담을 준게 아닌가 생각한다. 이 작품의 생각하게 만들었다는 원작 소설을 읽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소설을 미리 읽어 야지 연결고리를 쉽게 찾을 수 있다면, 이 한편의 영화를 보기위해 극장을 찾은 많은 사람들에게는 실례가 아닐까 한다.
마지막으로 영화 ‘박쥐’를 정리해 보면, 박찬욱 감독의 특유의 치명적인 강렬함, 잔인할 정도로 소름돋고 사랑스러운 연기, 극도의 긴장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풀어주는 재치있는 위트, 스토리 중간중간에 너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부족한 연결고리 정도로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