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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보는 조선왕실의 필수아이템 백자 항아리

Travel Story./국립중앙박물관

by 멀티라이프 2010. 8. 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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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자와 분청사기는 조선을 대표하는 도자기이다. 분청사기가 약 150년간 제작된 데 비해 백자는 조선시대 전 기간에 걸쳐 꾸준히 만들어지고 사용되었다. 순수와 절제의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백자는 유교이념을 추구한 새 왕자와 사대부층이 애용했기 때문에 그들의 사냥과 취향을 담고 있다. 조선백자의 역사는 왕실과 중앙 관청용 백자를 가마인‘관요'를 중심으로 살펴볼 수 있다. 관요는 경기도 광주에 설치된 사옹원소속의 분원을 말하는 것으로, 분원관요의 설치와 운영에 따라 초기ㆍ중기
ㆍ후기로 구분된다.
 
  조선백자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바라보고 있으면 단아한 아름다움에 기분을 차분하게 해준다. 도자기에 대해서 잘 알지를 못해서 각각의 자기가 가지고 있는 특징을 잘 알지는 못하는 본인도 백자를 바라보고 있으면 참 기분이 좋다. 하얀배경에 아무것도 없는 자기는 하얀색  그 자체만으로 아름답고,  다양한 그림이 그려진 자기는 단아한 아름다움과 그림이 절묘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움을 발산하다. 이런 느낌은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직접 받아볼 수가 있는데 "백자 항아리, 조선의 인과 예를담다"라는 이름으로 전시가 진행중에 있다. 그럼 전시중인 아름다운 우리의 백자를 만나보자.


 백자 매화 대나무 새 무늬 항아리(조선 15~16세기, 국보 170호)

 
 백자 대나무 매화 무늬 항아리(조선 16세기 후반~17세기 전반, 국보 166호)


 백자 모란넝쿨 무늬 항아리(조선 18세기, 보물 240호)


 백자 포도 원숭이 무늬 항아리(조선 17세기 후반~18세기, 국보 93호)





 백자 달 항아리는 높이가 40cm 이상 되는 큰 항아리로, 둥근 보름달을 연상시킨다고 하여 이러한 애칭이 붙여졌다.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까지 경기도 광주 금사리 가마에서 집중적으로 만들어 졌는데, 주로 저장용으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비슷한 크기의 커다란 발을 두개 만든 다음, 이것을 잇대에 붙여서 둥근 원고 같은 항아리를 만든다. 이러한 제작방법은 옹기에서 차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같은 제작 방법으로 인해 모든 달항아리에는 가운데 이은 흔적이 남아 있고, 몸통의 둥근 선은 정형화된 원에서 벗어나 넉넉한 품새를 지니고 있다. 달 항아리의 제작과정을 간단히 표현하면 위 사진속의 그림과 같다.















 조선 왕실에서는  사람이 날때 태로 인해 장성하고 그 운명이 결정되며, 왕실의 번영과 국가 운영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상에 근거하여 왕실 아기씨의 태 처리 절차를 국가 차원에서 관리하고 시행하였다. 왕자ㆍ왕녀등이 태어나면 일정한 의식에 따라 태를 항아리에 담고 산실안에 미리 정해놓은 길방에 안치하였다. 이후 풍수지리에 따라 길지에 태봉을 정하면 태지석과 태항아리를 함께 매장한 후 태실을 조성하였다. 이와 관련한 의식 절차와 기록을 모아 의궤를 만들었는데, 이를 통해 조선왕실이 태를 신성시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바로 위 사진의 왼쪽에 있는 것이 태항아리가 되겠다.

 
조선시대 백자항아리는 매력적이다. 정감이 느껴지는 흰 색과 조금은 투박하지만 멋스러운 자태가 보는 이로 하여금 미의 심연에 빠져들게 한다. 이런 점 때문인지 현대의 도예가들은 여전히 백자항아리를 빚는다. 그들의 항아리에는 전통에 대한 자부심과 치열한 작가정신이 투영되어 또 다른 역사를 만들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조선의 백자항아리는 소멸된 전통이 아니라 새로운 모습으로 부활하여 여전히 우리곁에 머물고 있다. 그리고 그 백자역사의 시작과 다양한 모습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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