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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왕실의 무덤(영묘)이 있는 '엘 에스코리알 궁전'

Travel Story./2009. 스페인

by 멀티라이프 2009. 11. 24.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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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인 마드리드 근천의 작은 전원도시, 아니 큰 마을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는 곳, 엘 에스코리알은 마드리드에서 기차로는 약 50분, 버스로는 1시간정도가 소용되는 곳이다.이 작은도시에는 규모에 어울리지 않게 마드리드 대학의 일부 캠퍼스가 있기도 하고, 엄청난 규모의 엘 에스코리알 궁전으로 불리는 엘 에스코리알 수도원 유적이 자리잡고 있다. 더구나 이 엘 에스코리알 수도원 유적1984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라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마드리드에서 기차를 타고 가면서, 산 중턱에 세워진 이 궁전이 어떻게 세계문화유산이 되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엄청난 규모 때문일까, 하나의 마을과 같았던 복합시설 때문일까 등등 여러가지로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막상 그곳에 도착해보니 내 생각이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엘 에스코리알 궁전의 지하에는 카를로스1세(1500~1558,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는 카를5세이며, 함스부르크가 출신으로 벨기에 태생이다. 페르난도 2세가 죽은뒤 스페인과 그 식민지를 계승했다.) 이후의 대부분의 국왕이 잠들어 있는 스페인 왕실의 영묘가 있었던 것이다. 시대별로 잘 모셔진 왕실의 무덤을 보고 있으니 우리나라의 종묘나 조선왕조 500년의 왕릉들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것과 비슷한 이유가 이 곳 엘 에스코리알에도 작용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추측일 뿐이다.


 1557년 생켕텡 전투(이탈리아 지배권을 둘러싼 프랑스와의 전투)에서 프랑스군을 격파한 펠리페 2세는그 승리를 기념하여 거대한 궁전 겸 수도원을 착고하기 시작했다. 펠리페 2세가 프랑스 앙리 2세를 격파하고 1559년 카토캉브레지 강화조약에 따라 나폴리를 점유했다. 1563년부터 짓기 시작한 이 궁전은 약 2600개의 창과 1200개의 문, 16개의 중정을 포함하는 대 공사를 거쳐 건축가 후안 바우티스타 데 톨레도와 그의 사후에 그 뒤를 이은 후안 데 에레라에 의해 21년이라는 긴 세월에 걸쳐서 완동되었다. 높이 95m의 원형 지붕이 있는 성당을 중심으로 오른쪽이 수도원이고 왼쪽이 왕궁이다.






 입구로 들어서면 우선 제왕들의 파티오라는 중정이 나오는데, 그 안쪽은 성당이다. 사진에 나오는 곳이 그곳의 정면이 되겠다.






 이 곳에는 4만권 이상의 장서가 있으며. 2700점에 이르는 예술적인 사본을 열람할 수 있다. 미술에는 큰 관심이 없어서 미술관이나 곳곳에 걸려있는 그림들을 유심히 살펴보지는 않았지만 엄청냔 양이 있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엘 에스코리알 궁전의 전체모습을 한눈에 보기 좋게 모형으로 만들어 두었다.


 박물관이라고 해야할까, 궁전에서 사용하던 다양한 도굴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특별한 장소를 마련해둔것이 아니라 성의 내부에 보기좋게 전시해 두었다.
















 화려하고 웅장한 궁전일 수록 드 넓은 정원을 보유하고 있다. 엘 에스코리알의 정원은 궁전의 규모에 비해서는 작은 편이다. 아마도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 자체가 정원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주변의 정원은 산책하기 좋게 잘 정돈되어 있었는데 크게 화려해 보이지는 않았다.


 개인적으로 엘 에스코리알 궁전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두어 둘러본 곳은 아마도 이 곳 스페인 왕실의 영묘가 있는 지하 무덤이었다. 무덤안쪽에는 철저하게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어서 카메라에 담지 못한것이 아쉽긴 했지만, 수 많은 혼령이 잠들어 있는 지하무덤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것도 조금 이상한 꼴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아쉬움을 쉽게 떨쳐낼 수 있었다. 이 영묘로 들어서는 순간 나도 모르게 싸늘한 기운이 내 몸을 감싸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 곳을 방문했을때가 한 여름의 7월임을 생각한다면 오싹해질 것이다. 이 곳의 영묘는 시대별로 가족별로 잘 정돈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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