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시 문화동에 자리잡고 있는 세병관은 통제영의 객사로 제6대 통제가 이경준이 이곳에 통제영을 옮겨 온 이듬해인 1605년에 처음 세웠고, 제35대 통제사 김웅해가 1646년에 규모를 크게 하여 다시 지었으며, 제193대 통제사 채동건이 1872년에 다시 고쳐 지은 것이다. 세병관이 위치한 곳은 조선시대의 해군본부라고 할 수 있는 통제영이 있던 곳인데 지금 남아 있는것은 세병관과 주변 일부정도이다. 세병관으로 가는길에는 망일루가 서 있다.
세병관 주변의 통제영지는 사적 40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최근 복원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다. 복원공사가 마무리 되면 조선시대 통제영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게 될듯하다. 삼도수군 통제영은 1604년에 설치되어 1895년에 폐지될 때까지, 경상ㆍ전라ㆍ충청의 3도 수군을 지휘하던 본부였다. 임진왜란때 제1대 수군통제사로 임명된 전라좌수사 이순신 장군이 한산도에 설치했던 본부가 최초의 통제영 이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떠난 정유재란 이후 여러곳으로 옮겨지다, 지금의 통영시 두룡포에 자리를 정했다. 1604년에 제6대 통제가 이경준이 부임한뒤, 제208대 통제가 홍남주까지, 무려 290년 간 왜적에 대비하는 조선수군의 총본부로서 오늘의 해군본부와 같은 곳이었다. 통제영이 기능할 때에는 세병관, 운주당, 백화당, 중영, 병교, 교방청, 산성청, 12공방, 장원홍예문과 같은 100여채의 관청과 영문이 늘어서 있었으나, 지금은 세병관만 남아있다. 현재 이곳의 지명인 통영도 통제영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망일루를 지나면 세병관으로 들어가는 길에 지과문이 등장한다.
세병이란 만하세병(挽河洗兵)에서 따 온 말로 '은하수를 끌어와 병기를 씻는다'는 뜻이며, "세병관(洗兵館)"이라 크게 써서 걸어 놓은 현판은 제136대 통제사인 서유대가 쓴 글씨이다.
세병관은 정면 9칸, 측면 5칸의 9량구조 단층 팔작집으로 경복궁 경희루 여수 진남관과 더불어 지금 남아 있는 조선시대 건축물 가운데 바다면적이 가장 넣은 건물 중 하나이다. 장대석 기단, 50개의 민흘림 기둥, 2익공 양식에 벽체나 창호도 없이 통칸으로 트여 있으며, 질박하면서도 웅장한 위용이 통제영의 기상을 잘 나타내고 있다.
건물은 전체적으로 우물마루에 연등천장을 시설한 것이나, 안쪽의 중앙 3칸만을 한 단을 올려 전패단을 만들고 상부를 소란반자로 꾸민 후 3면에 분합문을 두어 위계를 달리하였다.
세병관의 모습을 구석구석 살펴보고 지과문을 나오면서 마지막으로 세병관을 모습을 한번더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