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9년 6월 23일 오만원권이 시중에 등장하면서 오만원권에 초상화가 그려진 신사임당은 5천원권의 율곡이이와 함께 세계최초로 모자 화폐인물이 되었습니다. 한 나하의 화폐인물이 가지는 상징성을 생각해볼 때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신사임당과 율곡이이가 태어난 오죽헌이 더욱 큰 관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오죽헌은 1450년 무렵 지어진 건물로 1505년 형조참판을 지낸 최응현이 둘째딸의 사위 이사온에게 물려주었고, 이사온은 외동딸을 서울의 신명화와 혼인시켜 딸만 다섯을 두었는데 그 둘째가 신사임당입니다. 사임당의 어머니 용인이씨는 강릉의 친정어머니 최씨가 병이나서 간호를 위해 강릉에 머물러 있을때 오죽헌에서 신사임당을 낳았고, 사임당도 서울의 이원수와 혼인하였으나 홀로 계신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강릉에서 지내다 오죽헌에서 율굑을 낳았습니다. 비록 시집은 갔어도 친정부모를 보실피려는 '효'때문에 신사임당과 율곡이 오죽헌에서 탄생하게 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오죽헌이라는 이름은 사임당의 어머니가 넷째 딸의 아들 권처균에게 현재의 오죽헌을 물려준 후 집주위에 까마귀처럼 검은 대나무가 많아 권처균이 자신의 호를 오죽헌이라 지은데서 비롯되었습니다.
오죽헌은 강릉시립박물관과 같은 장소에 함께 자리잡고 있는데, 이곳에서 가장 먼저 발견할 수 있는것은 율곡과 신사임당의 동상입니다.
위 사진속 담장너머로 왼쪽에 보이는 건물이 오죽헌 입니다. 오죽헌은 조선초기에 지어진 별당건물로, 원형이 잘 보존된 대표적인 건축물입니다. 이 건물은 주심포양식에서 이익공양식으로 변해가는 건축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 1963년 보물 제 165호로 지정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상하게 오죽헌을 제대로 찍은 사진이 한장도 없어서 가까이서 찍은 사진을 함께 올리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래 사진은 율곡선생의 영정을 모신 사당인 문성사입니다.
오죽헌을 지켜주는 수호목은 3그루가 있는데, 위 사진은 사림당 배롱나무이고 아래나무는 율곡송 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천연기념물 제484호인 율곡매인데, 오죽헌을 찾았을때 귀신이 붙었는지 오죽헌과 가장 중요한 수호목인 율곡매를 제대로 찍은 사진이 한장도 없습니다. 율곡매는 600년된 매화나무로 오죽헌 몽룡실 옆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위 사진속의 바깥채는 남자들이 주로 거처하던 곳으로 신사임당의 외할아버지 이사온과 율곡선생의 외할아버지 신명화, 아버지 이원수, 율곡선생의 이종사촌 권처균이 거처했던 곳입니다. 그리고 아래 사진은 율곡제에서 입상한 작품들을 전시해둔 모습입니다.
오죽헌을 찾아서 가장 인상깊게 본것은 오죽헌도 아니고 천연기념물 율곡매도 아닌 어제각 이었습니다. 어제각은 정조임금이 1788년 율곡선생의 친필'격몽요결'과 어린시절 사용하던 벼루를 보고, 책에는 머릿글을, 벼루 뒷면에는 율곡선생의 학문을 찬양한 글을 새겨 소중히 보관하라는 분부를 내리자 이를 보관하기 위하여 지은 것입니다. 이런 어제각을 보고 있으니 어찌보면 단순한 문방구의 하나인 벼루까지 소중하게 보관되는 모습을 보고 사람은 정말 크게 되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쪽에는 율곡기념관이 있는데, 제가 찾아간 시기에는 공사중이어서 기념관에 있던 주요 전시품들은 시립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신사임당의 다양한 그림과 율곡선생과 관련된 유물중 일부를 사진속에 담아보았습니다.
겨례의 어머니와 겨례의 스승이 태어난 성지라고 할 수 있는 오죽헌과 강릉시립박물관은 강릉방면으로 여행을 떠난다면 꼭 한번 방문해볼만한 가치를 담고 있는 장소인듯 합니다. 세계최로의 모자 화폐인물인점은 물론이고 그들이 왜 겨례의 어머니이고 겨례의 스승이라고 불리는지 천천히 둘러보고 그 느낌을 스스로 찾아보는것도 좋을것 같습니다. 참고적으로 오죽헌은 경포해변에서 시작해서 해운정과 김시습기념관 선교장을 지나는 코스로 도보여행의 마지막 종점으로 정해도 좋습니다.
손가락 추천 한방씩 부탁드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