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토요일, 한국으로 돌아온지 2일만에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조선왕릉 서오릉을 찾았다. 해외에 나가 있는동안 조선왕릉이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는 반가운 소식도 있고 해서 피곤한 몸을 이끌고 찾아가 보았다. 지하철, 버스를 타고 찾아갈 때만 해도 사람들이 없는 한적한 모습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본인 이용 이동방법 : 지하철 3호선 녹번역 4번출구, 은평구청 방향에서 702A버스 이용, 9701버스도 서오릉까지 갑니다.)
그러나 막상 서오릉에 도착하고 보니 상상이상으로 많은 사람들이 서오릉과 함께 주말의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잘 관리된 왕릉과 함께, 수목원 부럽지 않은 나무숲속의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었고, 곳곳에 솔밭과 잔디밭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가족 또는 연인들과 찾아와서 돗자리를 깔고 도시락을 챙겨와 시원한 나무그늘 아래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리고 곳곳의 왕릉 앞에 세워져있는 해설표지판 앞에서는 이런저런 조선왕조의 이야기를 하면서 구경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조선 왕릉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서인지 아니면 공원처럼 편하게 쉴 수 있어서 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북적거리는 사람들이 있어서 왠지 기분이 좋았다.
(서오릉 내의 곳곳에 자리잡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 사람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으로..
혹시나 조선왕릉을 가볼려고 하시는 분들은 얼른 다녀오시기 바랍니다. 고궁중에 세계문화유산인 창덕궁이 몇배나 비싼입장료를 받는것처럼 입장료가 오를지도 모를일 입니다. 그리고 세계문화유산으로써 정비를 시작하면 주변에서 한적하게 휴식을 취하는 일도 어려워지지 않을까 하고 개인적으로 조심스럽게 생각해 봅니다.
1. 창릉 : 8대 예종(1469년)과 안순왕후(1498년)
사진에 보이는 왼쪽의 능이 예종 오른쪽이 안순왕후의 무덤이다. 기본적으로 무덤에서 바라볼때(사진에서 보는 반대 시각) 오른쪽이 왕의 무덤 왼쪽의 그의 부인의 무덤이 된다. 20세의 어린 나이에 떠나버린 예종, 29년이라는 세월을 홀로 지낸 안순왕후의 외로움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2. 홍릉 : 21대 영조의 원비 정성왕후(1757년)
무덤이 워낙 높은 언덕에 있어서 완벽하게 찍지는 못하였지만 잘 보면 무덤의 오른쪽이 비어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영조가 왕후의 능을 조성하면서 장차 함께묻히고자 오른쪽에 자리를 비워두었으나, 정성왕후의 옆을 지키려던 영조의 바람은 훗날 그의 손자 정조가 이 홍릉 자리를 버려두고 현재 영조가 잠들어 있는 동구릉 내 원릉(영조와 그의 계비 정순왕후)으로 능지를 정하는 바람에 물거품이 되었다. 죽어서 남편을 둘째 부인에게 뺴앗겨(?) 버린 비운의 왕후라고 해야할까...
3. 익릉 : 19대 숙종의 원비 인경왕후(1680년)
비교적 낮은 언덕이라 무덤이 다른 능 보다는 많이 나왔다. 11살에 시집와서 14살에 왕비가 되었으나 20살이라는 짧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인경왕후의 단릉이다.
4. 경릉 : 추존왕 덕종(1457년)과 소혜왕후(1504년)
위의 사진이 왕의 것이고 아래사진(언덕 높이때문에 정면에서 찍히지 않아서 뒤로 돌아가서 찍음)이 왕비의 것이다. 경릉은 특이하게 오른쪽에 왕비의 능이 왼쪽에 왕의 능이 자리잡고 있다. 또한 왕의 능은 추존왕 이었기때문에 난간석이나 망주석, 석수등의 호위가 없지만, 왕비릉은 생전에 왕비로 책봉되었으므로 능제도에 따라 구색을 갖추었다. 남편이 죽고 무려 47년을 홀로 궁에서 보낸 소혜왕후, 그 오랜 시간을 어떻게 보냈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5. 명릉 : 19대 숙종(1720년)과 첫번째 계비인 인현왕후(1701년), 두번째 계비인
인원왕후(1757년)
사진의 오른쪽이 숙종과 인현왕후, 왼쪽이 인원왕후이다. 인현왕후가 승하하자 숙종은 능을 조성하면서 오른쪽에 자신의 자리를 비워두었고, 승하후 자신의 소원대로 인현왕후 오른쪽에 잠들에 되었다. 명릉에서 특이한 점은 인원왕후의 무덤이 가장 높은 자리인 오른쪽 언덕을 차지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인원왕후가 부군의 근처에 묻히기를 소망하여 숙종이 잠든 명릉에서 약 400보 떨어진 곳에 자신의 능지를 미리 잡아두었으나, 영조는 미리 정해둔 자리를 두고 지금의 자리에 그녀를 모셨다. 인원왕후가 정해둔 자리에 능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넓은 소나무 숲을 벌채하는 등 막대한 인력과 국고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인원왕후는 생전의 소원보다 더 가까이 묻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숙종의 능보다 높은 자리에 잠들게 되었다.
6. 순창원 : 13대 명종 첫째 아들 순회세자(1563년)와 세자빈(공회빈) 윤씨(1592년)
13세의 어린나이에 요절한 순회세자나 어린나이에 시집와서 2년만에 과부가 되어서 29년을 살아간 공회빈이나 모두 불쌍하기 짝이 없다. 근사한(?) 무덤이 잘 관리되고 있지만, 제대로 된 삶 한번 살아보지 못한 순회세자와 어린나이에 과부가 되어 29년을 산 공희빈을 볼때 다 부질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7. 수경원 : 21대 영조의 후궁 영빈 이씨(1764년)
후궁묘의 예로 조성하여 석물들이 단촐하게 꾸며져있다. 원래 그녀의 무덤은 지금의 신촌에 조영되었으나 1920년대 연희전문학교가 인근에 개교하고 확장하면서 교내에 수경원이 위치하게 되어 1968년 6월 현재의 서오릉에 천장하게 되었다.
8. 대빈묘 : 19대 숙종의 후궁이자 경종의 어머니 인 희빈 장씨(1701년)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장희빈의 무덤치곤 너무 초라하기 그지 없다. 사약을 받고 죄인의 신분으로 떠났으나 왕(경종)의 어머니 라는 이유로 그나마 이 정도의 묘라도 조성된게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훗날 그녀의 아들인 경종은 장희빈을 옥산부대빈에 추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