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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역사의 현장 '화천 파로호'의 겨울

Travel Story./강원도

by 멀티라이프 2009. 12. 8.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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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말 한국전쟁의 역사가 남아있는 파로호와 파로호 전망대를 찾았다. 화천댐의 건설로 생긴 파로호(화천 저수지)는 한국전쟁 당시 한국전쟁의 흐름을 바꾸는 중요한 전투가 있었던 역사적 현장이다. 화천 저수지라고 불리던 이곳이 오랑케를 물리친곳 이라는 뜻의 파로호(破虜湖)로 불리게 된것도 파로호 전투의 큰 성과 때문이기도 하다.
 파로호 전투는 한국전쟁당시 국군 제6사단, 학도의용군 그리고 해병 제1연대가 중공군 제10ㆍ25
ㆍ27군을 화천저수지에 수장시킨 전투이다. 이 전투에서 국군은 대전과를 올렸는데, 당시 사단장 정도영 장군은 "후퇴하는 중공군을 추격하여 길가에 늘어진 중공군을 쓰레기 줍듯이 트럭에 실어 담았으며 아군소대 병력이 적 대대병력을 무더기로 생포하는 진풍경이 연출되었다."라고 회상하였다. 파로호 전투에서 중공군 62,000여명을 사살하거나 생포하였고, 아군은 전사 341명, 부상 2011명, 실종 195명의 피해를 입었다. 이상과 같은 전투로써 6사단은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부대 표창을 받았으며 중공군 포로를 많이 잡았다고 해서 화천 저수지(구만리 저수지)를 파로호(破虜湖)라고 명명하였고, 구만리 언덕 화천 발전소 뒷산에 이승만 대통령이 친필로 쓴 전승비를 세우게 되었다.
※ 파로호 전투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였습니다. 파로호 전투에 대한 전쟁사를 알고 싶으신분은 개인적으로 메일또는 방명록. 댓글을 통해 문의해주세요.
6.25때 꽁꽁 언 댐상류에 숙영중인 중공군에게 폭격을 해서 깨진 얼음속으로 중공군 수만명이 수장을 당해 오랑캐를 물리쳤다하여 파로호로 불리게 되었습니다.(엔조님의 댓글을 통해서 세부설명 추가합니다.)

자유수호탑..
파로호전투에서 전사한 무명의 학도병이
"길손이여 자유민에게 전해다오. 우리는 겨례의 명령에 복종하여 이곳에 누웠노라"
라는 전우에게 남긴 마지막 말을 후세에 길이 전하고, 추모하고자 1975년 10월 26일 화천군이 건립하였다.


파로호 전망대를 오르내리며,,
갑자기 쏟아진 눈이 종종걸음을 걷게 만들었다.


파로호비..(왼쪽)
이승만 대통령이 친히 전선을 방문하여 장병들을 격려하고 쓴 '피로호'라는 친필 휘호를 보존하기 위하여
1955년 10월 제6사단에서 사단의 상징인 청성표시와 함께 건립한 것이다.


파로호 전망대 앞에서 바라본 파로호..
저 멀리 호수 한가운데 물고기 모먕이 인상적이다.
눈이 펑펑 내려서 시야는... ㅠㅠ


전망대에서 내려와 유람선을 타는 곳으로 왔을땐 다행히 눈이 그쳤다.


유람선을 타고 평화의댐까지 고고씽!
하늘은 여전히 흐리다..


섬 한가운데 작은 섬이 있었다..
이름하여 '다람쥐섬'


오후가 되면서 날씨가 조금씩 좋아지고 있었다.




섬 주변 곳곳에는 집들이 드문드문 있었는데..
정말 별장 하나 가지고 있었으면 하는 곳들이었다.


유람선에서 잠시 선장실에 들어가 보았다.
나란히 걸려있는 모자들..


평화의댐을 구경하고 배가 돌아올때는 어느덧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해가 질려고 폼을잡기 시작하자
그제서야 하늘이 푸른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저멀리 눈덮힌 산과 뭉게뭉게 피어오른 구름이 잘 어울린다.






푸른 하늘,,, 하얀구름,,, 눈덮힌 산,,,


배가 호수를 가르고 온 흔적이 살며시 보인다.


이날의 화천은 다소 추운날씨였다. 배 어딘가에 달린 고드름..


유람선의 흔적,, 그리고 멋진 풍경..


이제 배가 도착할려고 한다.


선착장 주변에는 작은 배들이 여기저기...


이날 파로호를 구경시켜준 유람선은 물빛누리호!!

※ 이 글에 사용된 모든 사진은 리사이징을 제외한 어떤 보정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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