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에서 학교를 다녔다면 한번쯤은 소풍장소로 가봤을 곳인 대왕암공원을 지난 연휴에 집에 다녀오면서 잠깐 들렸다. 울기등대로 더 많이 알려지기도 한 이곳은 울산의 1호 공원으로 한 마리의 용이 하늘로 날라올라 이 곳 등대산 끝 용추암 언저리에 잠겨드니 그 때부터 이 곳을 대왕암(대왕바위)이라 불렀다고 한다. 대왕암공원에서는 문화재청에서 지정한 한국근대문화유산인 울기등대도 볼 수 있고, 해안가를 따라 도는 다양한 산책로도 마련되어 있어서 남녀노소할것 없이 편안하게 휴식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특히 이곳에는 무료주차장도 제법 넓게 마련되어 있어서 개인 승용차를 가지고가도 무리가 없다.
대왕암공원은 길이 참 아름다운 곳이다. 공원을 찾은 날은 비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산책을 하고 있었는데, 우산을 든 분들이 있어서 길이 더욱 아름다워 보이는것인지도 모르겠다.
이곳의 송림은 대왕암송림 또는 울기등대 송림이라 불리며 오래전부터 울산시민들의 쉼터로 사랑받던 곳이다. 오랜만에 이곳을 찾으니 어릴적 소풍을 와서 송림에서 뛰어놀고 노시락을 먹던 기억이 나서 오랜만에 추억속으로 혼자만의 여행을 떠나볼 수 있었다.
산책로 주변에는 다양한 꽃들이 방문객들을 반겨주고 있었다. 그 중에서 금낭화가 제일 예뻐 보여서 사진속에 담아 보았다. 몇일전 금낭화에 대한 글을 적었으니, 금낭화의 모습을 다양하게 보시고 싶으신분은 다음 링크를 참고해 주세요. ※ 분홍빛 등불같은 복주머니 모양의 금낭화 : http://donghun.kr/559
대왕암공원내에는 울기등대가 있다. 사진속에 앞에 보이는 등대가 구 등탑이고 뒤에 보이는것이 지금 사용중인 신 등탑이다. 구 등탑은 한국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문화재 제 106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울기등대 구 등탑은 1905년 2월 목재로 만들어진 등간으로 건립되어 방어진항을 유도하는 항로표지로 사용되었다가 1906년 3월 26일(추정)부터 현재의 장소에 콘크리트 구조물로 새로 설치되어 1987년 12월 12일까지 80여년간 사용 되었다. 이 기간 일제강점기 때 울산의 방어진항은 성어기에 매월 6~7백 척의 어선과 3~4천 명의 어부가 드나들 정도로 번성하였고, 포경업도 더불어 발달하였다. 또한 관련산업인 방어진 철공소와 무라카미 조선소가 들어서기도 하였다. 이런 발전에 따라 1955년 12월 12일 부산지방 해무청 방어진 출장소가 설립되게 되었다. 건립당시는 최고 높이가 6.1m로 건립되었고, 주변 자연환경의 변화에 따라 1972년 11월 팔각형 콘트리트로 3m 수직 증축하였다. 울기등대 구 등탑은 구한말 시대의 건축양식을 잘 간직하고 있어 새로 지어진 등대와의 배교를 통해 당시 건출술과 그 기법 등을 알아 볼 수 있는 좋은 대상이 되고 있다.
삼국통일을 이룩했던 신라30대 문무왕은 평시에 지의법사에게 말하기를 "나는 죽은 후에 호국대룡이 되어 불법을 숭상하고 나라를 수호하려고 한다"라고 하여, 대왕이 재위 21년만에 승하 하자 그의 유언이 따라 동해구의 대왕석에 장사를 지내니 마침내 용으로 승화하여 동해를 지키게 되었다. 이렇게 장사 지낸 문무왕의 해중를을 대왕바위라 하며 그 준말이 '댕방위'로 경주시 양복면에 있다. 대왕이 돌아가신 뒤에 그의 왕비도 세상을 떠난 후에 용이 되었다. 문무왕은 죽어서도 호국의 대룡이 되어 그의 넋은 쉬지 않고 바다를 지키거는 왕비또한 무심할 수가 없었다. 왕비의 넋도 한 마리의 큰 호국룡이 되어 하늘을 날아 울산을 향하여 동해의 한 대암밑으로 잠겨 용신이 되었다고 한다. 그 뒤 사람들은 이곳은 지금의 대왕바위라 불렀고 세월이 흐름에 따라 말이 줄어 대왕암이라 하였으며, 또 용이 잠겼다는 바위 밑에는 해초가 자라지 않는다고 전해오고 있다. 예전에는 멀리서 대왕암을 구경만해야 했으니 최근에는 다리와 함께 대왕암에 직접 올라볼 수 있도록 잘 조성 해두었다.
이곳 대왕암에도 사랑을 약속하는 연인들의 자물쇠가 달려있었다.
대왕암 위에서 주변을 둘러보니 저 멀리 현대중공업이 보이기도하고 건너편 바위위에는 바다를 구경하고 내려오는 사람들이 보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