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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엄마! 국보 9호는 뭐야?

Travel Story./충청도

by 멀티라이프 2010. 6. 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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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은 스포츠 경기에서 금메달만 기억하고 어쩌다 3위 안에는 들어야 사람들의 머리속에 남아있게 됩니다. 이것은 비단 스포츠 뿐만아니라 모든 부분에서 똑같은데요, 우리의 문화재를 바라보는 시각도 똑같은것 같습니다. 국보 1호는 잘알고 보물 1호는 잘 알지만 호수가 점점 늘어날때마다 나는 사람들은 급격히 줄어들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은 국보중에 그래도 한자리 숫자의 끝자락인 9호에 대해서 소개해 봅니다.


 정림사지는 백제말 123년의 도읍기를 통틀어 남아있는 유일한 백제유적으로 백제사비도성건설과 함께 세워져 왕실의 흥망성쇠와 함께 한 곳이다. 남북 일직선상의 중문, 탑, 금당, 강당순의 백제가람의 대펴적인 모델이다. 고려시대(1028)에 제작된 명문을 통하여 정림사지라 불리고 있다. 백제문화권정비사업의 핵심사업으로 주변부지를 매입하고 발굴조사를 거쳐 가람터를 정비하여 오늘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이 과정에서 5층석탑은 국보 제9호로 지정되었고, 석불좌상은 보물 제108호로 지정되었다. 또한 정림사지 자체는 국가사적 제301호로 지정되었다.






 백제의 장인들은 기존의 목조가 가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석재를 택했다. 세부 구성형식이 정형화되지 못한 미륵사지 석탑에 반하여 정림사지 5층석탑은 정돈된 형식미와 세련되고 완숙한 미를 보여준다. 또한 좁고 낮은 단층기단과 각 층 우주에 보이는 민흘림, 살짝 들린 옥개석단부, 낙수면의 내림마루등에서 목탑적인 기법을 볼 수 있지만 목조의 모방을 멋어나 창의적 변화를 시도하여 완벽한 구조미를 확립하였고, 우리나라 석탑의 시원양식으로서 그 의의가 크다.


 이 불상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불에 타고 심하게 마모되어 대좌와 불상이 형체만 남아있다. 좁아진 어깨와 가슴으로 올라간 두 손의 표현으로 보아 진리를 나타내는 비로자나불상으로 짐작된다. 머리와 갓은 후대에 복원한 것이다. 대좌는 비교적 잘 남아 있는데 단정하면서도 균형있는 조각솜씨를 엿볼 수 있다.


 정림사지의 바로 옆에는 정림사지박물관이 만들어져 있다. 이 박물관은 백제사비시기 불교와 그 중심에 있었던 정림사를 주제로 백제불교문화를 재조명하고 올바른 역사인식을 고취시키고자 정림사를 1/12로 축소한 모양으로 건립했다.








 백제의 대표적인 유물인 전돌과 기와를 제작하는 과정을 65% 축소모형으로 연출하였고, 백제시대 부여지역에서만 확인된 건축기술과 백제의 금동불 제작과정을 각 단계별로 재현하여 백제만의 기술과 특징을 모형과 영상을 중심으로 느낄 수 있다.










 정림사지의 원형 초석도 전시되어 있다.


 정림사지는 여러 시대에 걸친 유물이 출토되고 있으나 특히 창건기인 백제시대와 중견기인 고려시대의 유물이 집중적으로 출토되었다. 백제시대 불교와 관련된 유물로는 삼존불입상과 소조불, 도용 등이 출토되었고 고대 불상조각사의 연구와 중국과의 교류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학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정림사지박물관에서는 정림사지 발굴모습과 발굴 당시부터 현재까지 정림사지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전시하여 관람객의 이해를 돕도록 하였다.


 백제, 사비도성의 중심에 정림사가 있었다. 이제, 백제인의 꿈과 땀이 밴 그 역사의 현장에서 여러분은 타임머신 속의 백제를 경험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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