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1일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단통법)이 시행 된지 3개월여의 시간이 흘렀지만, 법이 가지고 있는 이름이 무색하게 유통구조는 개선되지 않고 있다. 국민들을 위해 시행한다고 했던 단통법은 오히려 이동통신 3사의 마음을 더욱 편하게 해주면서 대기업을 위한 법이라는 소리마저 듣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는 아직 시행 이후 충분한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모든 일이 꼭 경험해봐야 그 결과를 아는 것은 아니라고 하면서 법이 시행됨에 따라서 벌어지는 결과도 예측하지 못하는 정부부처의 무능력을 질타하고 있다.
단통법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인 것은 결정적으로 스마트폰 가격정책이 법 시행 전보다 소비자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 3개월여 동안 가격정책이 어떻게 변화했고, 2015년에는 어떻게 변화 할 것인지 예측해보자.
먼저 스마트폰 가격에 있어서 가장 큰 변화는 소비자가 받을 수 있는 보조금의 혜택이 줄어들어서 프리미엄급 신제품을 구매하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필요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단통법 이전에도 보조금에 대한 상한선이 있긴 했지만, 조금만 발품을 팔면 무료나 거의 무료에 가깝게 스마트폰을 사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는 받을 수 있는 보조금(공시지원금)에 한계가 생겼고, 그마저도 고가의 요금제에 가입해야만 가능하다. 이렇다보니 음원차트처럼 과거의 제품이 인기를 얻는 역주행 현상까지 일어나고 있다.(출시일 기준 15개월이 지난 제품은 보조금에 제한이 없다.) 이동통신 3사와 제조사들은 이런 분위기 속에 정부의 단말기 가격인하에 대한 지속적인 압박으로 보급형 모델의 출고가를 과거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책정하고 있지만, 10~20만원대의 세계적인 추세에 비하면 비싼 가격대가 형성되어 있다.
일부 사람들은 출고가를 낮춘 보급형 단말기들이 속속 출시되면서 단통법이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하기도 하지만, 이는 단통법의 영향은 아니다. 현재 세계 스마트폰 시장은 저가폰 열풍에 휩싸여 있다. 국내 제조사들도 이런 흐름에 어느 정도 보조를 맞춰야 하는데, 단통법이 좋은 픙계꺼리가 되어 준 것이다. 단통법이 없는 상태에서 제조사들이 가격을 낮추게 되면 그동안 지속적으로 제기된 부품들의 단가 문제를 스스로 인정하는 격이 된다. 하지만 단통법이 제조사들에게 단말기의 가격을 인하할 수 있는 좋은 명분을 제시해 줬기 때문에, 제조사들은 마음 편하게 시장의 흐름도 다라가고 정부의 압박도 견더낼 수 있게 된 것이다. 결국 지난 3개월간 소비자들은 단통법 덕분에(?) 이동통신요금 증가와 사용 단말기의 하향평준화라는 결과를 얻었다.
그렇다면 2015년에는 지금돠 다른 특별한 변화가 이루어질까? 많은 사람들이 뭔가 지금과 다른 가격정책이 등장하기를 바라고 있겠지만, 현실은 우리들이 원하는 방향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다. 최상의 사양을 갖춘 프리미엄 제품들은 여전히 고가의 가격대를 형성할 것이며, 보급형 제품에 한해서 30~40만원대의 가격대가 형성 될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스마트폰이 계속 쏟아지면서 재고를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출시된지 6개월에서 1년정도 된 제품들도 출고가 인하를 단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서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비교적 최신기종의 출고가를 낮추는 것이 갱신주기가 빨라진 시장의 상황과 중국의 저가정책에 대응하기 위한 행동이라는 것이다. 재고처리를 위한 출고가 인하는 과거에도 자주 있던 일로, 우리가 출시 후 시간이 다소 지난 단말기 출고가에 대해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아서 인지하지 못했을 뿐이다. 과거에는 충분한 보조금을 받고 스마트폰을 구매 했기 때문에 신제품에만 관심이 몰리곤 했었다.
단말기 유통구조가 개선되기 위해서는 이동통신사는 이동통신 서비스만 판매하고, 단말기는 제조사나 유통업체가 판매하는 구조가 마련 돼야 한다. 지금처럼 이동통신사가 서비스도 제공하고 관련 단말기도 유통시키는 구조를 버리지 못하는 이상, 어떤 법이 생겨나도 비상식적인 지금의 유통구조가 개선되는 일은 한 낮 꿈에 불과하다. 그리고 합법적으로 가격담합이 가능한 독과점시장을 만들어준 단통법 덕분에(?), 우리는 기업하기 좋은 세상, 소비자들은 바보가 되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