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이 창덕궁을 창건할 당시 조성한 후원은 나중에 창덕궁과 창경궁 두 궁궐의 공동 후원이 되었다. 이들 궁궐이 다른 궁궐보다 특히 왕실의 사랑을 많이 받은 것은 넓고 아름다운 후원 때문일 것이다. 임진왜란 때 대부분의 건물이 불타고 후원이 훼손되어 광해군이 창덕궁과 함께 1610년(광해2년)에 재건하기 시작했다. 그 후 인조, 숙종, 정조, 순조 등 여러 왕들이 개수하고 중축하여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창덕궁 후원은 자연 지형을 그대로 살리면서 골짜기마다 인공적인 정원을 만들었다. 약간의 인위적인 손질을 더해 자연을 더 아름답게 완성한 절묘한 솜씨이다. 4개의 골짜기에는 각각 부용지, 애련지, 관람지, 옥류천 정원이 펼쳐진다. 4개의 정원은 안으로 들어갈수록 크고 개방된 곳에서 작고 은밀한 곳으로, 인공적인 곳에서 자연적인 곳으로 점진적으로 변화하며 뒷산 응봉으로 이어진다.세계 대부분의 궁궐 정원은 보고 즐기기 위한 관람용이어서 한눈에 볼 수 있는 장대한 경관이 펼쳐진다. 이에 비해 창덕궁 후원은 작은 연못과 정자를 찾아 여러 능선과 골짜기를 오르내리며 온몸으로 체험해야 진정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옥류천은 후원 북쪽 가장 깊은 골짜기에 흐른다. 현재 물이 거의 흐르지 않고 있어 다른 정원들에 비해서 뭔가 부족한 느낌을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곳에는 소요정, 태극정, 농산정, 취한정 등 작은 규모의 정자를 곳곳에 세워, 어느 한 곳에 집중되지 않고 여러방향으로 분산되는 정원을 이루었다. 그래서 조금 산만한 느낌을 준다거나 어수선해 보이는 느낌을 주기도 하는 곳이다.
옥류천을 지나서 시원한 나무그늘 아래로 걸어가다보면 저멀리 푸른 잎 사이로 정자가 보인다. 존덕정 일원으로 가는 길이다. 이 곳을 찾았던 10월 22일에는 아직 가을이 다 찾아오지 않았는지 푸르른 여름의 느낌을 주는 나무들도 많이 있었다.
1644년에 지어진 이 건물은 처음에는 육면정이라고 부르다가 존덕정으로 바뀌었다. 저 뒤로 나무에 반쯤 가려진 건물은 길쭉한 맞배지붕의 펌우사 이다. 관람지라고도 불리는 이 일대는 후원 가운데 가장 늦게 갖춰진 곳으로 보이는 곳이다.
아직까지 조금 부족하지만 그래도 가을은 가을인가보다. 형형색의 단풍이 관램객들을 반기고 있었다.
존덕정 일원의 전체모습이다. 왼쪽에 살짝 보이는 승재정과 펌우아, 오른쪽에 자리잡고 있는 존덕정과 관람정이 자연과 하나되어 조화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군자의 성품을 닮은 경치를 자랑한다고 하는 애련지의 모습이다. 사진속의 정자는 애련정 이라 불린다. 연꽃을 특히 좋아하는 숙종이 이 정자에 '애련'이라는 이름을 붙여, 연못은 애련지가 되었다. 숙종은 '내 연꽃을 사랑함은 더러운 곳에 처하여도 맑고 깨긋하여 은연히 군자의 덕을 지녔기 때문이다'라고 새 정자의 이름을 지은 까닭을 밝혀 놓았다. 연못에 비친 정자와 단풍이 인상적인 곳이다.
후원의 첫번째 중심 정원인 부용지와 주합루는 휴식과 학문적 용도로 쓰인 아름다운 건물들이 있는 곳이다. 아래 사진의 가장 큰 건물이 규장각이다. 그 왼쪽에 자리하고 있는 건물은 서향각이 되겠다. 주합루 일원의 이 두 건물은 왕실 도서관 용도로 쓰였다. 두 건물의 앞쪽에 자리하고 있는 문은 어수문이다. 주합루는 천지 우주와 통하는 집이란 뜻이고, 어수문에는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다는 격언과 통치자는 항상 백성을 생각하라는 교훈미 담겨있다. 이곳 역시 연못에 비친 건물들의 모습과 주변의 나무들이 조화로워 마치 처음부터 이곳의 주인이 이 건물들 이었나 하는 착각이 들게 하는 곳이다. 부용지 일원의 사정기비각..
부용지 일대의 부용정.. 이곳에 앉아 유유자적 차한잔의 여유를 느껴보고 싶다..
왕이 입회하는 특별한 과거시험을 치르기도 했던 영화당.. 역시 부용지 일대에 자리하고 있다.
사대부 살림집을 본뜬 조선 후기의 접견실인 연경당은 효명세자가 아버지 순조에게 존호를 올리는 의례를 행하기 위해 1827년쯤에 창건했다. 지금의 연경당은 고종이 1865년쯤에 새로 지은 것으루 추정하고 있다. 연경당에는 다양한 행사를 할 수 있는 작은 무대도 마련되어 있었다. 나무로 된 의자가 왠지 마음에 드는 곳이다. 사진의 왼쪽에 보이는 건물이 연경당, 가운데 보이는 건물이 선향재이다. 이곳이 조금 사대부 살림집을 본떠서 만들었지만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일반 민가가 99칸으로 규모가 제한된 데 비해, 연경당은 120여칸의 규모로 만들어졌다.
연경당의 한쪽에 자리잡고 있는 행랑채..
건물들의 문들을 모두 활짝 열어두어서 시원한 느낌을 준다.
돌을 쌓아서 담을 쌓았는데, 계단식으로 쌓아둔것이 조금 특이하게 보인다.
완벽하진 않지만 창덕궁 후원에도 이미 가을이 수줍은듯 조심스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직 푸르른 빛깔을 자랑하고 있는 단풍잎도, 붉은빛을 발하는 단풍잎도 모두 아름답기는 마찬가지이다.
창덕궁 후원을 거닐다 보면 임금 할만한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맑은 공기와 시원한 바람이 있고, 낭만과 여유를 즐기 수 있는 나만의 정원..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곳이다. 창덕궁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후 목요일을 제외하고 자유관림이 불 가능한 곳이다. 가이드를 따라 다니는 코스관람은 볼 수 있는 곳도 한정되 있어서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이 곳이 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는지 알고 싶다면 목요일 자유관람일에 창덕궁을 찾도록 하자. 자유관림이 일반관람에 비해서 요금이 5배나 비싸지만 마음으로 얻을 수 있는 가치는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것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