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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이성계의 탯줄을 묻은 석실, 만인산 태조대왕태실

Travel Story./대전

by 멀티라이프 2010. 4. 2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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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전 만인산 자연휴양림에서 산책을 하다가 태조대왕태실(유형문화재 제131호)을 구경하였다. 태실은 왕이나 왕실 자손의 태(胎)를 묻은 석실이다. 만인산에 있는 태실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태를 모신 것으로 만인산의 산봉우리 아래에 있었으나, 지금의 태봉 터널 위 산봉우리에 조성되어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고려 말~조선 초에 한 시인이 전국의 명산대천과 명승고적을 두루 돌아볼 때 만인산을 보고, 산의 모양이 깊고 두터우며 굽이굽이 겹쳐진 봉우리는 연꽃이 만발한 것 같고 계곡의 물이 한 곳에 모여든다고 찬양하였다. 왕실에서는 이 소문은 듣고 지관을 보내 이곳을 답사하니 과연 시인의 말과 같았다. 이 태실은 맨 처음 함경도 용연지역에 두었다가 1396년 태조5년에 무학대사의 지시로 남쪽 산허리에 태조의 태실을 만들어 태를 안치하고 태실비를 세웠다. 이 후 만인산을 태봉산이라고도 불러왔다. 1928년 조선 총독부에서 전국에 있는 왕의 태 항아리를 서울로 옮겨갈 때 이 태실 구조는 파괴되었으나, 최근에 약 100 떨어진 곳에 여러 석물들을 모아 복원하였다.




 만인산 휴양림의 산책로는 참 좋은곳이다. 태실을 가는길 또한 명품이라는 말이 어울리정도로 멋진 길이었다.



태조대왕태실이 비석에 선명하게 쓰여져있다.



비석의 뒷면에는 복원한 날이 기록되어 있다.





 여유와 낭만을 찾기 위해서 찾았던 만인산 자연휴양림에서 보게된 태조대왕태실은 게임을 하다가 득템을 한 기분이었다. 왕실의 탯줄까지 묻는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왔지만 직접 태실을 보니 조선왕조의 위용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만들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하는데 조선왕실의 사람들은 탯줄까지 남겨두었으니 성공한 삶을 산것이라고 할 수 있는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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