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새롭게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경주 양동마을은 함께 지정된 안동 하회마을에 비해서 덜 알려진 마을 이었습니다. 하회마을은 세계문화유산이 지정되기 전부터 대표적인 한옥마을으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외국인들도 많이 찾던 곳이었지만, 양동마을은 찾는 관광객도 많지않고 비교적 조용한 분위기의 마을이었습니다. 보존된 한옥의 수나 역사를 따지면 양동마을도 하회마을에 비해서 전혀 뒤지지 않지만 경주에 워낙 많은 위대한 유산이 있었기에 조금 묻혀있었던 마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마을을 천천히 걸어보면 마을의 규모는 오히려 조금더 큰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이런 양동마을에 최근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세계문화유산 지정이후 엄청난 사람들이 매일같이 몰려들면서 양동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이곳을 찾는 관광객 모두 굉장히 불편함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몇명 되지 않는 사람들이 찾아왔었기에, 모든 문화재를 개방해두고 마을사람들도 구경오는 여행객들을 불편해 하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엄청난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여행객들은 편의시설의 턱없는 부족으로 불편함을 겪고 개방되지 않은 문화재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또한 마을 사람들은 사상활침해와 문화재이자 삶의터전인 한옥들이 손상되는 피해를 겪고 있습니다. 양동마을은 다른 문화재들과 달리 단순히 관리하고 구경하게 해두는 곳이아니라 마을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이곳을 구경하기 위해 방문한 관광객들은 양동마을을 단순한 문화재로써 바라볼것이라 아니라 삶이 진행되고 있는 마을로 그들의 삶을 존중하면서 구경해야 할것입니다. 따라서 편의시설이 부족하고 관광하기 부족하다고 불평하기보다는 그냥 자신의 고향마을을 둘러보듯이 편안한 마음으로 둘러봤으면 합니다. 세계문화유산으로써 몰려드는 관광객을 편하게 맞이할 방도를 마련하기는 해야겠지만 그들의 삶이 방해받지 않아야 하기에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기달려야 할 것 같습니다.
※ 양동마을 : 상류층 양반들이 대대로 살아온 곳으로, 조선 시대 가옥 150여 채가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이 가운데 종가나 큰 기와집은 대체로 높은곳에 있고 초가집은 평징에 있습니다. 이 마을에서 조선시대 청백라인 우재 손중돈과 성리학자 회재 이언적을 비롯하여 많은 인물들이 배출되었으며, 2010년 7월 31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한국의 역사마을에 등록되었습니다.
경주 양동마을을 찾았던 8월 중순의 오후는 무척이나 더웠습니다. 폭염주의보가 발효된 날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럼에도 참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서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어릴적 이곳을 찾았을때 한적했던 모습과는 완전 다른모습이었지요. 무척 더운날씨에 땀이 비오듯 쏟아지긴 했지만 다행히 맑은 날씨덕분에 사진은 볼만한것 같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양동마을을 방문해서 한옥들의 모습을 조금 가까이서 자세히 찍어보고 싶었는데, 개방되지 않은 장소도 많고 마을 주민분들께 방해가 될까봐서 전체적인 모습위주로 사진속에 담았습니다. 한옥의 이런저런 모습은 아쉽지만 제 머리속에만 담아두기로 했습니다.
보물 제442호 관가정 : 조선 성종때 이조판서를 지낸 우재 손중돈 이 분가하여 살던 집
보물 제412호 향단 : 조선시대 성리학자 회재 이언적이 경삼감사로 있을 때, 모친의 병간호를 하도록 중종이 지어준 집으로 실용적인 수납공간과 동선을 최소로 한 구조가 매우 특이한 건물
중요민속자료 제23호 서백당 : 월성 손씨 종택으로 양민공 손소가 지은 것
서백당의 일부 모습인데, 줄줄이 늘어선 손님상을 보면 이곳이 종가집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한번에 얼마나 많은 손님들이 오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지요. 이 곳도 집안에는 들어가보지 못했는데, 활짝 열린 문 사이로 줄줄이 늘어선 상들이 보여서 사진속에 남겼습니다.